모든 사물은 규겪과 사이즈가 있다.
나는 Christian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시하려고
높이/ 깊이/ 넓이/ 길이/ 크기라는 사이즈의 단위를 사용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사이즈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연인들의 흔히 하는 말에는
나는 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그러면 상대도 나도 너를 <공기만큼 공기 속의 먼지만큼 사랑 해> 한다.
이 말은 사랑의 크기와 진실성을 나타내려는 심정일 것이리라.
우리의 부모님들도
나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이고 너를 위해서는 나는 무엇이든 해> 한다.
이 말도 자기 자녀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임을 표현하는 말이리라.
그러나
연인도 부모도 누구도 자기가 좋을 때 했던 말들을 끝까자 책임지는 사람을 보기는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책임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부인 할 사람은 없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럴까?
나는 <않그렇다>는 표시가 그의 독생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그 후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죽엄을 불사하며 <이 사랑>을 전했고 지금은 인류의 절반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세상이 되었다.
아마도 이 추세라면 1 세기 안에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를 못들은 자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높이/ 깊이/ 넓이/ 길이/ 크기에서 마치 우주의 크기를 정확히 재거나 바람이나 물의 무개를 재는 것 같은 불가능한 것의 실체를 이르는 것이다.
그 진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불로 죽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증거>라 하셨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로 인간을 돕고 그 인간을 중심으로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게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가항력적 절대자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식언하거나 약속을 잊거나 변명하지 안는다고 하셨다.
그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며 <너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 하셨고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했고
그의 제자들은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 했다.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께로 가는데 무슨 조건이 있냐고 묻지 말라.
비록 당신의 죄가 주홍 같고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갔고 내가 한 짓이 밉더라도 염려말라.
도로에는 곳곳에 유턴(U)표시가 있고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은 분명히 <복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이고 일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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