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13:21)

과연 주의 손이 네게 짧았느냐? (사50:1-2)

민수기 21장 9절에서, [쳐다본즉]이란 말은 안쳐다본 이들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왜 절박한 상황이었는데도 안처다 봤을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70억에 가까운 인류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같은 것을 일률적으로 바라서는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심각한 문제 앞에서 책임의 소재를 논하고 잘 못에 대한 결과를 바로 잡으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줍니다. 사 50:1-2에 보면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입니다.

여기서 묻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에게 짧았습니까?> 어떤 상황에 있건 간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은 당신들 앞에서 하나님이 감당 할 수 없는 바다가 앞을 막고 섰을 때 어찌했으며 기진하여 죽게 되었을 때 누가 사막 같은 데서 강물이 솟아 마시게 했습니까?

그럼에도 본문은 하나님이 도우시려 오셨을 때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뿐입니까? 불렀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짓말 하십니까?

제가 돌아 다녀 본 지구촌 처처는 다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이 IMF 때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자영업자 30만 명이 폐업을 신고했고 하루에 3명꼴로 자살 한다 합니다. 중국은 소상공인회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필립핀/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몽골/러시아 할 것 없이 최악의 상황들입니다. 선교사들이 오죽했으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겠다.>고 견디다 못해 사역지에서 쓰러지고 울며 철수하겠습니까. 우리는 불평하시면 안 됩니다. [오직 너희는 너희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내어보냄을 입었느니라.]라고~ 그래서 그걸 해결해 주시려고 주가 오셨는데도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고 불러도 들었으면서도 대답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옛날 우리가 더 어려웠을 때에도,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되고 좋아서 하나님을 잠시나마 잊고 살 때에도, 그리고 어려움을 씹으며 고통하고 있는 지금 이 때에도, 그리고 더 좋아질 앞날에도 결코 변함없이 손을 내 비십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이 말씀은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아는데 왜 내 앞에 없느냐는 것 아닙니까? 왜 내가 불렀는데 대답하지 안냐는 거 아닙니까? 이 말은 또 내 앞에 있고 내 말에 응답하면 주가 해결한다는 게 아닙니까? 그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않았느냐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우리 모두가 놋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죽겠느냐/ 살겠느냐! 또 쳐다 볼 것이냐?]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이니 나는 안 본다 할 것이냐!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살기를 바라면 쳐다봐야 합니다. 주의 부르심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가 우리를 고치고 싸매고 해복시켜서 전보다 낫게 한다 합니다.

저는 전했습니다. 로마서 3장 9-29절을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과 마가복음 10장 29-30절은 이어지는 것이라고 바로 이것이 주의 앞에 있는 것이고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여러분! 본문은 고난을 [주의 특별한 면회요청]이라 했습니다.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당신이 지금 계신 바로 그 자리가 나와 너, 우리 모두를 고치는 자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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