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류 제 창 Ph. D 2025.01.30 신명기 5 장은 출애굽기 20 장과 함께 [십계명]이 기록 된 장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자기가 선택한 민족이 다른 이방 족속들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준 계율]이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성민(聖民) 이스라엘이 신명기 5 장 29 절 같이 [자자손손 실패 없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비결)]이었다. 우리는 [코람 데오]란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이 말은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지엄하신 하나님 앞에 있다]는 [두렵고 떨림의 뜻]으로서 사람이 보나 안 보나 [주께 하듯] 해야 함을 이르는 것으로서 [성도의 바른 품성(생활)을 독려하는 말]이다. 그러나 신명기 5 장 31 절 상반절의 [너는 내 곁에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곁에 우리를 세워 놓고 우리가 다 함께 지켜 폼 나게, 자랑스럽게, 안전하게. 행복하게 잘 살 방법을 주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사야 30 장 20-21 절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곁에 서 있기만 하면 우리의 상태 즉 무식하거나/가난하거나/병약하거나/아무 의지 할 것이 없을 지라도, 내 힘이 아닌 전능하신 이의 능력으로 [안전하며 강건하며 형통하며 장수하며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마태복음 5 장 16 절/야고보서 2 장 11/20 절은 우리의 삶이나 행위를 이방인에게 보여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믿음]이 의미가 없듯 사람에게 인정되지 않는 인격을 하나님이 보호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십일조도 얼마만큼 하고 교회를 위해 보증도 서고 상당한 직분도 가졌기로 하나님이 내 기도는 즉시 응답하니 부탁 할 일이 있으면 말하라>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신앙연조가 짧고 아직 초보인데 왈 <그런 하나님 no thanks>라고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교회가 이런 이유로 쇠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70년을 넘게 달려 왔지만 아직도 잡지도 이루지도 못한 미숙한 Christian이다. 내가 목사를 하고 교수를 하고 선교사를 했는데도 아직도 잡지도 이루지도 못했다는 것은 교회와 교인들 앞에서는, 학교와 학생들 앞에서는, 선교지 와 원주민들 앞에서는 그럴싸하게 살아 왔지만 나 자신과 내 가족(家族)과 내 하나님 앞에서는 마냥 부끄러운 것을 변명(辨明)할 길이 없음을 고백(告白)해야 할 때 나의 이 비참하고 참담함은 필설(筆舌)로 표현할 수 없다. 요즘의 하루는 옛날의 10년만큼이나 빠르다. 주께서 우리의 거처 마련하시기를 마치시면 곧 오실 것이다. 성경은 이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많을 것이라 했다. 이 경고는 신자인 우리가 대중들 앞에서는 물론이고 내 가족과 교회와 하나님 앞에서와 나 혼자 있을 때에도, 심지어는 극심한 anti들에게 까지 <나의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2015년을 한 달 살고 난 후에야 정신이 들어 이 글을 쓴다.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