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13:21)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 일(사명수행)의 도구다. (고전12:4-10)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사탄도 같다. 사탄은 하늘에서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땅으로 추방(계12:7-9) 된 후 땅에서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공중의 권세를 장악하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에베소 2장 1-7절을 보면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고 치열한지를 알 수 있다.

세상 나라도 영토와 권세를 불리기 위해서는 전쟁을 하듯 영의 세계에서도 같다 할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과 사탄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도 사탄도 각기 사람을 사용한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일군 아니면 사탄의 일군인 것이다.(롬6:13) *일군이란 군사면 武器를, 농부면 農器具를, 어부면 고기 잡는 漁具를, 상인이면 돈(Money)을, 공업인은 機械를, 네티즌은 컴퓨터(Computer)를 사용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사탄도 각각 유효한 비장의 무기(은사)들을 자기의 사람들에게 주어 승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은사는 일의 도구며 방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흔히 성령의 은사가 구원의 필수 요건이거나, 없으면 신자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일군]이란 말이고 일군에게는 빠짐없이 연장이 주어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연장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목적을 위해 주어진 것은 같다는 것이고 그래서 서로서로 각자의 은사를 존중하고 협력하여 공동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1.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사는 어떤 경로로 내게 오시는가?

모든 것이 그렇듯 하나님의 은사도 선물이지만 레벨에 따라 오시는 순서와 경로가 있다.

 

1) 먼저 세상과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것]으로의 선언적 표로 은사를 주신다.(평안)

*믿음/회개/용서/화해의 은사는 처음 믿는 신자에게 하나님이 [내가 너를 나의 것으로 인정한다]는 표로 주신 것이다. 그 증거가 긴장 대신 [넉넉함]이며 자신감과 [평안]이다.

2) 다음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확신의 은사를 주신다.(기쁨)

*환상/예언/방언/병 고침/능력 행함의 은사들인데 이 은사를 체험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상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적이며 인격적임을 인식하게 되고 기도뿐 아니라 매사를 하나님 안에서의 자기로 받아들여 비로소 하나님 중심의 참 신자가 되는 것이다.

3) 그 다음으로는 자기 멋대로 살던 우리를 하나님의 원대로 바꾸는 은사가 온다.(감사)

*겸손/온유/섬김/봉사/긍휼/충성의 은사가 오면 이미 이 신자는 잘 양육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신자가 얼마나 되냐에 따라서 그 교회가 튼튼하고 좋은, 모범교회인지가 가름된다. 왜냐하면 이런 신자는 자기보다 하나님/말씀/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4) 마지막으로는 심복의 은사를 주신다.(솔선수범/양 무리의 본)

*교사/목사/장로/선교사/전도자/독신/순교의 은사인데 이 은사들은 아주 특별한 신자에게만 주어진다. 예수님은 이 일을 맡기시기 전에 서약을 받으셨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것도 세 번씩이나 다짐하셨다. 그럼으로 <주의 심복>들은 누구나 [자기를 부인(자기중심적 삶을 포기)하고 제 십자가(신앙생활의 장애들을 오히려 심복의 표로 여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최후까지 따라가야 한다.(주와 복음과 교회를 위한 절대 헌신)]는 전제에 조건 없이 동의해야 한다. 이는 마가복음 10장 29-30절을 이름이다. 복음은 이런 심복들에 의해서 전파되며 교회는 이런 신자들의 의해 사탄의 세력들을 이겨간다.

 

  1. 성령의 은사는 예외 없이 전도의 수단이다.

하나님은 목적 없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성령의 은사도 분명한 의도가 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경영>을 설명하는 데는 세상 학문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아시고 설명과 완성의 역할을 맡겨 성령을 각 신자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1) 은사는 신자이면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은사 없는 신자는 없다. 은사는 성령이다. 은사는 예수의 영이다. 은사는 하나님이시다. 고로 신자인데 은사가 없겠는가! 그런 이유로 신자는 은사를 적극 사용해야 한다. 은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초 신자는 간증할 때, 성숙한 신자는 전도할 때, 헌신된 신자들은 사역할 때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2) 신자는 모든 은사를 다 사용할 수 있지만 결코 고정적이진 않다.

*은사는 일의 연장이고 도구다. 따라서 사역에 따라 다른 연장을 가지고 나가야 하듯 은사는 바뀔 수 있다. 또 성숙도에 따라서도 하는 일이 달라지면 은사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 은사는 무엇이든 지체 없이 나타나고 그 효력이 발생한다.(병 고침/능력행함/경이로운 언변/기도의 응답 등)

3) 은사 사용은 전도가 주목적이다.

*은사는 신자를 갑자기 성숙시킨다. 믿은 지 얼마 안 된 신자가 <손을 넌즉 즉 병이 낫고 방언을 하고 예언과 능력을 행한다.> 하자, 교회 안에서 누구라서 그 사람을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사람이 자기를 위해 주시는 [확신의 은혜]를 착각하고 마치 자기도 사역한다고 병 고치는 일과 예언을 일삼으면 은사를 잘 못 사용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방언/병 고침/환상/예언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은사는 사역자들이 전도용으로 쓰는 것과 초 신자의 것을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4) 사도행전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성경이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복음전도를 위해 일한 것을 기록한 성경이다. 사도행전에는 너무 놀라운 은사들이 사용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개인을 위해 쓰여 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은사를 사서 자기 사업을 삼으려 했던 사마리아 성의 마술사 시몬이 사도 베드로로부터 책망 받는 것을 보더라도 <성령의 은사는 오직 주와 복음>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5) 소위 은사 자들과 [가정 제단]에 대하여

*가정교회는 초대교회와 지금도 복음전도가 자유롭지 못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자주 보는 교회형태이다. 그러나 문제되는 것은 믿으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신자의 표인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은사가 나타나고, 은사는 3단계니 첫 단계인 [확신]을 위해 주시는 은사가 전부인 줄 알고 마치 <사역자>처럼 가정에서 병을 고치고 방언/예언을 빙자하여 영서라는 것을 쓴다며 현혹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이것은 영계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신앙과 성경에 대하여 초보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고 성령이 말씀한다며 무책임한 말을 하는데 오히려 오래된 신자들이 이에 넘어가 <신통하다, 신령하다>고 왕래하고 있다.

 

맺는 말

성령의 은사는 신자의 표와 전도용이다. 그러나 은사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의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은 몸의 각 지체로 비유하시면서 <눈이 코를, 발이 손을, 귀가 입>을 대하여 <너는 필요 없다>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알 것은 기준은 오직 하나님과 성경일 뿐, 어떤 경우에도 <나는 표준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하나님과 그의 만드신 것에 맞추려해야지 그것들을 내게 맞추려 해서는 어디서나 불협화음을 만드는 요인이 되고 신앙과 교회와 복음전파에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류 제 창 Th.D/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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